시문 (31) 썸네일형 리스트형 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반갑게 악수를 나누고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하얀 입김 뿜으며열띤 토론을 벌였다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저마다 목청껏 불렀다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회비를 만 원씩 걷고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즐.. 릴케, 고대의 아폴로 토르소 고대의 아폴로 토르소 라이너 마리아 릴케 무르익은 눈망울이 있었던 그의 미증유(未曾有)의 머리를 우린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의 토르소는 여전히 촛대처럼 빛난다, 그 속에서 그의 응시는 다만 웅크려들었을 뿐, 변함없이 번쩍인다. 그렇지 않다면야 가슴의 만곡(彎曲)이 그대 눈을 부시게 할 수 없을 것이며, 살포시 허리를 뒤틀어도 한 가닥 미소가 생식의 요람이었던 저 중심을 향해 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야 이 돌덩이는 그저 두 어깨가 투명하게 내려앉은 짤막하고 일그러진 모습으로 서 있을 것이며 맹수의 가죽처럼 그렇게 윤이 나지 않을 것이다. 또 별처럼 모든 가장자리에서 빛을 발하지도 않을 터인데, 그럴 것이 그대를 보지 않는 데가 거기엔 한 군데도 없으니 말이다. 그대는 그대의 삶을 바꿔야만 한.. 릴케, 가을날 가을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에는 바람을 풀어놓아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이 완전히 영글도록 명해 주소서; 그들에게 더 남쪽의 낮을 이틀 더 베푸시어, 그들이 무르익도록 재촉하시고, 묵직한 포도송이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오래도록 그렇게 남아, 깨어나고,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나뭇잎들이 뒹굴 때면 가로수 길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거닐 것입니다. Herbsttag Rainer Maria Rilke Herr; es ist Zeit. Der Sommer war sehr groß. Leg deinen Schatten au.. 브레히트, 후손들에게 후손들에게 I 참으로 나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 악의 없는 말은 어리석다. 매끄러운 이마는 무감각함을 나타낸다. 웃는 자는 끔찍한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을 뿐이다. 나무들에 대한 대화가 수많은 비행에 대한 침묵을 내포하는 것이므로, 거의 범죄나 다름없게 되는,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란 말인가! 저기 차분히 길을 지나가는 사람을 곤경에 빠져 있는 그의 친구들은 아마 더 이상 만날 수 없겠지? 사실이다, 내가 아직 내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는 것은. 그러나 믿어다오, 그것은 단지 우연일 뿐이라는 것을. 내가 행하는 그 어떤 것도, 내가 배부르게 먹는 것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우연히 나는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나의 운이 다하면, 나도 끝장이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먹고 마셔라! 네가 소.. 브레히트, 예심판사 앞에 선 16살 봉제공 에마 리이스 예심판사 앞에 선 16살 봉제공 에마 리이스 16살 봉제공 에마 리이스가 체르노비츠에서 예심판사 앞에 섰을 때 그녀는 요구받았다, 징역 살혁명을 호소하는 전단을 왜 뿌렸는지, 그 이유를 대라고. 그 대답으로 그녀는 똑바로 일어나 노래했다, 인터내셔널을. 예심판사가 머리를 절제절레 흔들었을 때그녀가 그에게 호통쳤다. 기립하시오! 이것은인터내셔널이오! DIE SECHZEHNJÄARIGE WEISSNÄHERIN EMMA RIES VOR DEM UNTERSUCHUNGSRICHTER Bertolt Brecht Als die sechzehnjährige Weißnäherin Emma RiesIn Czernowitz vor dem Untersuchungsrichter standWurde sie aufgefordert.. 셰익스피어, 인생이란 걸어다니는 그림자... Life's but a walking shadow... William Shakespeare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 Creeps in this petty pace from day to day To the last syllable of recorded time, And all our yesterdays have lighted fools The way to dusty death. Out, out, brief candle!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Told b.. 브레히트, 코뮤니즘은 평범한 것이다 코뮤니즘은 평범한 것이다 모든 기존 질서를 갈아엎자고 호소하는 건 끔찍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기존의 것은 질서가 아니다. 코뮤니즘이 그예 폭력에 호소하는 건 악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늘 행해지고 있는 것이 폭력이기 때문에 특별할 게 전혀 없다. 코뮤니즘이란 오직 작은 일부만 실현될 수 있는 극단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코뮤니즘이 완전히 실현되어 있기 전에는, 아무리 무감각한 사람이라도 견딜 수 없는 상황이 존재한다. 코뮤니즘은 실로 최소한의 요구이자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평범한 것, 이치에 맞는 것이다. 코뮤니즘에 반대하는 사람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이 없는 사람이거나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며 인류의 적이다. 끔찍하게 악하게 무감각하게 특히 아주 작은 부분만 겨우 실현되는 극단적인..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