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문/우리시

송경동, 교조

교조



나는 이제 당신에게

내가 느낀 그 어떤 것도

솔직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문득문득 나도 양지가 그리웠다는 이야기를

간혹 엉망으로 무너지고 싶을 때 많았다는 이야기를

당신에게 해주기 싫어요

당신이 얼마나 깨끗한 영혼인지 증명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병든 영혼인지를 내보이고 싶지 않아요

모든 게 다 이해되고

모든 게 다 해석되는 당신에게

그 무엇도 모르겠는 이 답답함을

더는 상의하고 싶지 않아요

그 모든 고백이 당신 가슴께로 가지 않고

차디찬 머리로 갈 거니까요

당신은 친구의 말을

진술로 받아들이죠

친구의 눈물을

혐의로 받아들이죠

당신은 하나의 틀만 가지고 있는데

내 열망과 상처는 수천만갈래여서

이제 당신에게 다가갈 수 없군요

 

출처: 송경동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창비 2016, 74~75.

 

'시문 > 우리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은,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  (0) 2017.11.22
송경동,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0) 2017.10.31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1) 2017.06.15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1) 2017.06.14
백석, 수라  (1) 2017.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