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우리시

김남주, 혁명은 패배로 끝나고

김이산 2017. 4. 21. 22:18

혁명은 패배로 끝나고



                                   김남주

 


서른에서 마흔몇 살까지

황금의 내 청춘은 패배와 투옥의 긴 터널이었다

이에 나는 불만이 없다

자본과의 싸움에서 내가 이겨

금방 이겨

혁명의 과일을 따먹으리라고는

꿈에도 생시에도 상상한 적 없었고

살아 남아 다시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와 함께 밥상을 대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나 또한 혁명의 길에서

옛 싸움터의 전사들처럼 가게 될 것이라고

그쯤 다짐했던 것이다

 

혁명은 패배로 끝나고 조직도 파괴되고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 부끄럽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징역만 잔뜩 살았으니

이것이 나의 불만이다

그러나 아무튼 나는 싸웠다! 잘 싸웠거나 못 싸웠거나

승리 아니면 죽음!

양자택일만이 허용되는 해방투쟁의 최전선에서

자유의 적과 싸웠다 압제와

노동의 적과 싸웠다 자본과

펜을 들고 싸웠다 칼을 들고 싸웠다

무기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들고 나는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