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무산, 광장은 비어 있다
광장은 비어 있다
백무산
우리가 우리를 버리고 기꺼이 이곳에 모인 것은
시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모여 이토록 뜨거운 광장을 이룬 것은
데모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저 문란한 연회장은 우리의 나라가 아니고
저 지저분한 계모임은 결코 우리의 정부가 아닌데
우리가 저들에게 요구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이곳에 모인 이유는
저들이 국민을 탄핵했기 때문이다
저들 맘대로 도륙하고 처분한
우리가 맡긴 양 떼를 찾아오기 위해서다
우리가 이곳에 모인 것은
진압을 하기 위해서다
국헌을 걸레로 만든
쥐들의 내란과 개들의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이 광장에 모인 것은
우리 삶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다
부패한 나라에서는 누구든
정직하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광장에 모인 것은
철거를 하기 위해서다
저들의 금고에 빼돌린 정부를 회수하기 위해서다
저들이 담장을 치고 착복한 국가를 압수하기 위해서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곳에 모인 것은
의회를 위해서다
지금 이곳이 바로 국민의 의회이기 때문이다
이 광장이 바로 이 나라 최고 권력기구인 시민의회이기 때문이다
이 의회를 개돼지들의 떼거리로 취급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에 모인 것은
억류된 역사의 수문을 열기 위해서다
피로 이뤄낸 민주주의를 썩은 물에 익사시킨
불통과 독재의 댐을 폭파하기 위해서다
저들의 금고에 새긴 애국에 똥칠을 하기 위해서다
저들의 동상에 새겨진 권력의 문장을 들어내고
새로 쓰는 역사의 공동 집필자가 되기 위해서다
이제 대중은 양 떼가 아니라
한 명 한 명이 사자인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 광장이 더 이상 시위나 데모가 아닌 것은
촛불은 약자의 분노 행진이 아니라
주권자의 권리 행진이기 때문이다
광장에서는 그 누구든 어디서건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중심이기 때문이다
광장의 평등은 우리 삶의 뒤틀린 질서를 질책하는
뜨거운 심장의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광장은 언제나 비어 있다
우리가 모여 빈틈없이 가득 채워진 이 순간에도
광장은 텅 비어 있는 것이다
뜨겁게 뜨겁게 비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