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데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이 1938년 <여성>(1938. 3)에 발표한 시다. 이 시를 쓸 무렵 백석이 <전쟁과 평화>를 영화로 봤다고 하니, ‘나타샤’란 이름은 '톨스토이의 나타샤’에서 따왔을 것이다. 외국 여인네의 이름을 보니 백석이 우리나라의 1세대 번역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생각난다. 북한에 있을 때는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과 파데예프의 <청년근위대>도 번역했다고 한다.
‘백석의 나타샤’일 공산이 큰 사람은 당시 <전쟁과 평화>를 같이 봤다고 하는, 백석의 여인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자야(子夜)’다. 백석이 이백의 시 ‘자야오가(子夜吳歌)’에서 따와 아호로 ‘자야’라 부른 사람의 본명은 김영한(金英韓)(1916~1999). 백석이 함흥 영생고보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였을 때 만난 기생이었다. 기생이라 하지만 보통 기생이 아니라, 동경의 문화학원을 수학한 엘리트 여성이자 수필 몇 편을 발표하기도 했던 문학여성이었다. 이 분은 고급요정으로 유명했던 서울 <대원각>의 주인으로서, 또 말년인 1997년 당시 시가로 1,000억 원에 달했던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희사, <길상사>라는 사찰이 서울 도심에 생길 수 있게 만든 공력(功力)으로써도 유명하다. 창비사에서 주관하고 있는 ‘백석문학상’도 이 분이 재원을 댄 덕분에 생긴 것이라 한다.
‘나타샤=자야’는 자야의 일방적 주장(<내 사랑 백석>, 김자야, 문학동네, 1999)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두 권으로 된 백석 평전(<시인 백석>, 송준, 흰당나귀, 2012)을 쓴 송준에 따르면, 이 시는 '자야'가 아니라 다른 여성을 마음에 두고 쓴 시다. 백석에게 물어볼 수 없게 된 마당에 어느 쪽의 주장이 옳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자야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고 송준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다. 아니면, “하나의 기표에 여러 기의가 응축되듯이”, ‘나타샤’는 백석이 “살면서 만나고 사랑했던 여러 여성들이 응축된 존재”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백석은 문학의 세계와 현실의 삶을 분리하여 이 시를 썼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나타샤는 진짜 여자가 아니라 백석이 부딪혔던 현실의 어려움을 벗어나게 해주는 이상향 같은 이미지를 의미할 수도 있다”(<기억의 몽타주>, 류동민, 한겨레출판, 2013, 115~117쪽). 조금 과한 말 같지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결국, 시읽기는 시 자체로 돌아온다.
이 시를 읽는 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드는 시어가 있다. 바로 "눈"이다. 이 시에서 "눈"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왜 "눈"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내리는 걸까? ‘사랑’과 연관하여 흔하게 활용되는 긍정적 이미지의 담지체로서의 ‘눈’일까? 정반대로 볼 수는 없을까? “눈”, 그것도 “푹푹 나리”는 눈은,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와 같은 계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나타샤 사이를 갈라놓는, 둘의 합일을 방해하는 분리의 상징으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앞의 관형어 "가난한"과 나타샤 앞의 관형어 "아름다운"이 대비적으로 배치된 것도 그렇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지 않는가?
그렇다면 마지막 연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 연은 화자의 상상이다. 여기서 “푹푹 나리”는 “눈”은 나와 나타샤 사이가 아니라 나/나타샤와 세상 사이를 분리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첫째 연과 마지막 연 모두에서 ‘눈’은 분리의 상징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설사 이렇게 읽을 수 있다 하더라도 “푹푹 나리”는 “눈”은 “흰 당나귀”와 어울려 ‘눈’의 통상적 이미지에 부합하는 낭만적 정조를 환기시킨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아니, 더 적극적으로, 이 시에서 “눈”은 사랑과 조응하는 '분위기-장치'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봐도 첫째 연과 마지막 연에 대한 해석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시에서 “눈”은 이중적 해석이 동시에 가능한 시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단순해 보일 수 있는 이 시에서 흥미로운 대목이 바로 그 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