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우리시
송경동, 교조
김이산
2017. 10. 31. 18:39
교조
나는 이제 당신에게
내가 느낀 그 어떤 것도
솔직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문득문득 나도 양지가 그리웠다는 이야기를
간혹 엉망으로 무너지고 싶을 때 많았다는 이야기를
당신에게 해주기 싫어요
당신이 얼마나 깨끗한 영혼인지 증명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병든 영혼인지를 내보이고 싶지 않아요
모든 게 다 이해되고
모든 게 다 해석되는 당신에게
그 무엇도 모르겠는 이 답답함을
더는 상의하고 싶지 않아요
그 모든 고백이 당신 가슴께로 가지 않고
차디찬 머리로 갈 거니까요
당신은 친구의 말을
진술로 받아들이죠
친구의 눈물을
혐의로 받아들이죠
당신은 하나의 틀만 가지고 있는데
내 열망과 상처는 수천만갈래여서
이제 당신에게 다가갈 수 없군요
출처: 송경동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창비 2016, 74~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