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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우리시

김지하, 1974년 1월

19741


 

                                 김지하



19741월을 죽음이라 부르자

오후의 거리, 방송을 듣고 사라지던

네 눈 속의 빛을 죽음이라 부르자

좁고 추운 네 가슴에 얼어붙은 피가 터져

따스하게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하던

그 시간

다시 쳐온 눈보라를 죽음이라 부르자

모두들 끌려가고 서투른 너 홀로 뒤에 남긴 채

먼 바다로 나만이 몸을 숨긴 날

낯선 술집 벽 흐린 거울 조각 속에서

어두운 시대의 예리한 비수를

등에 꽂은 초라한 한 사내의

겁먹은 얼굴

그 지친 주름살을 죽음이라 부르자

그토록 어렵게

사랑을 시작했던 날

찬바람 속에 너의 손을 처음으로 잡았던 날

두려움을 넘어

너의 얼굴을 처음으로 처음으로

바라보던 날 그날

그날 너와의 헤어짐을 죽음이라 부르자

바람 찬 저 거리에도

언젠가는 돌아올 봄날의 하늬 꽃샘을 뚫고

나올 꽃들의 잎새들의

언젠가는 터져나올 그 함성을

못 믿는 이 마음을 죽음이라 부르자

아니면 믿어 의심치 않기에

두려워하는 두려워하는

저 모든 눈빛들을 죽음이라 부르자

아아 19741월의 죽음을 두고

우리 그것을 배신이라 부르자

온몸을 흔들어

온몸을 흔들어

거절하자

네 손과

내 손에 남은 마지막

따뜻한 땀방울의 기억이

식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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