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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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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아아 光州여, 우리나라의 十字架여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 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
백기완, 묏비나리 묏비나리(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 백기완 맨 첫발 딱 한발 떼기에 목숨을 걸어라 목숨을 아니 걸면 천하 없는 춤꾼이라고 해도 중심이 안 잡히나니 그 한발 떼기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라 아니 그 한발 떼기에 언땅을 들어올리고 또 한발 떼기에 맨바닥을 들어올려 저 살인마의 틀거리를 몽창 들어엎어라 들었다간 엎고 또 들었다간 또 엎고 신바람이 미치게 몰아쳐오면 젊은 춤꾼이여 자네의 발끝으로 자네 한몸만 맴돌자 함이 아닐세 그려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저 썩어 문드러진 하늘과 땅을 벅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려라 돌고 돌다 오라가 감겨오면 한사위로 제끼고 돌고 돌다 죽음의 살이 맺혀오면 또 한사위로 제끼다 쓰러진들 네가 묻힐 한 줌의 땅이 어디 있으랴 꽃상여가 어디 있고 마주재비도 못 타보고 썩은 ..
이시영, 5월 어머니회 5월 어머니회 아르헨띠나의 ‘5월 어머니회’는 지금도 세 가지의 금도를 지킨다고 한다. 첫째로 실종된 자식들의 주검을 발굴하지 않으며, 둘째로 기념비를 세우지 않으며, 셋째로 금전보상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아직 그들의 가슴속에서 결코 죽은 것이 아니며, 그들의 고귀한 정신을 절대로 차가운 돌 속에 가둘 수 없으며, 불의에 항거하다 죽거나 실종된 자식들의 영혼을 돈으로 모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무산, 광장은 비어 있다 광장은 비어 있다 백무산 우리가 우리를 버리고 기꺼이 이곳에 모인 것은 시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우리가 모여 이토록 뜨거운 광장을 이룬 것은 데모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저 문란한 연회장은 우리의 나라가 아니고저 지저분한 계모임은 결코 우리의 정부가 아닌데우리가 저들에게 요구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이곳에 모인 이유는 저들이 국민을 탄핵했기 때문이다저들 맘대로 도륙하고 처분한우리가 맡긴 양 떼를 찾아오기 위해서다 우리가 이곳에 모인 것은 진압을 하기 위해서다 국헌을 걸레로 만든 쥐들의 내란과 개들의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이 광장에 모인 것은우리 삶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다부패한 나라에서는 누구든 정직하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광장에 모인 것은 철거를 하기 위해서다 저들의..
이시영, 네슬레 네슬레​ 이시영​​​아옌데는 만약 선거를 통해 집권하면 열다섯살 이하 모든 어린이들에게 매일 0.5리터의 분유를 무상배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해 9월 선거에서 승리한 인민전선은 칠레의 모든 우유산업을 독점하고 있던 스위스의 다국적 기업 네슬레를 상대로 제값 주고 살 터이니 분유를 공급해달라고 했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수만명의 어린이들은 아옌데 정권 이전처럼 다시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개혁은 좌절됐으며 미국은 마침내 삐노체뜨를 앞세운 군부 쿠데타를 통해 그를 사살하기에 이른다. 1973년 9월 11일 그는 군인들로 둘러싸인 대통령궁에서 마지막 라디오 연설을 한다. "나는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이길 수 있겠지만 사회의 진전을 범죄나 힘으로 멈추게 할 수는 없..
김수영, 사랑의 변주곡 사랑의 變奏曲 김수영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강이 흐르고 그 강건너에 사랑하는암흑이 있고 삼월을 바라보는 마른 나무들이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기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이제 가시밭,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는열렬하다間斷도 사랑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같은암..
신동엽, 4월은 갈아엎는 달 4월은 갈아엎는 달 신동엽 내 고향은 강 언덕에 있었다.해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가난. 지금도 흰 물 내려다보이는 언덕무너진 토방가선 시퍼런 풀줄기 우그려 넣고 있을아, 죄 없이 눈만 큰 어린것들. 미치고 싶었다. 4월이 오면산천은 껍질을 찢고 속잎은 돋아나는데,4월이 오면 내 가슴에도 속잎은 돋아나고 있는데,우리네 조국에도 어느 머언 심저, 분명새로운 속잎은 돋아오고 있는데, 미치고 싶었다. 4월이 오면곰나루서 피 터진 동학의 함성.광화문서 목 터진 4월의 승리여.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이 균스러운 부패와 향락의 불야성 갈아엎었으면갈아엎은 한강연안에다 보리를 뿌리면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밭.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그날..
김남주, 혁명은 패배로 끝나고 혁명은 패배로 끝나고 김남주 서른에서 마흔몇 살까지황금의 내 청춘은 패배와 투옥의 긴 터널이었다이에 나는 불만이 없다자본과의 싸움에서 내가 이겨금방 이겨혁명의 과일을 따먹으리라고는꿈에도 생시에도 상상한 적 없었고살아 남아 다시 고향에 돌아가어머니와 함께 밥상을 대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나 또한 혁명의 길에서옛 싸움터의 전사들처럼 가게 될 것이라고그쯤 다짐했던 것이다 혁명은 패배로 끝나고 조직도 파괴되고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 부끄럽다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징역만 잔뜩 살았으니이것이 나의 불만이다그러나 아무튼 나는 싸웠다! 잘 싸웠거나 못 싸웠거나승리 아니면 죽음!양자택일만이 허용되는 해방투쟁의 최전선에서자유의 적과 싸웠다 압제와노동의 적과 싸웠다 자본과펜을 들고 싸웠다 칼을 들고 싸웠다무기가 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