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우리시 (20) 썸네일형 리스트형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눈물은 왜 짠가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 둬라”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신경림, 산1번지 山1番地 신경림 해가 지기 전에 산 일번지에는바람이 찾아 온다.집집마다 지붕으로 덮은 루핑을 날리고문을 바른 신문지를 찢고불행한 사람들의 얼굴에돌모래를 끼어얹는다.해가 지면 산 일번지에는 청솔가지 타는 연기가 깔린다.나라의 은혜를 입지 못한 사내들은서로 속이고 목을 조르고 마침내는칼을 들고 피를 흘리는데정거장을 향해 비탈길을 굴러가는가난이 싫어진 아낙네의 치맛자락에연기가 붙어 흐늘댄다.어둠이 내리기 전에 산 일번지에는통곡이 온다. 모두 함께죽어버리자고 복어알을 구해 온어버이는 술이 취해 뉘우치고애비 없는 애를 밴 처녀는산벼랑을 찾아가 몸을 던진다.그리하여 산 일번지에 밤이 오면대밋벌을 거쳐 온 강바람은뒷산에 와 부딪쳐모든 사람들의 울음이 되어 쏟아진다. (1970)-------------- 누렇게 바랜 .. 김지하, 1974년 1월 1974년 1월 김지하 1974년 1월을 죽음이라 부르자오후의 거리, 방송을 듣고 사라지던네 눈 속의 빛을 죽음이라 부르자좁고 추운 네 가슴에 얼어붙은 피가 터져따스하게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하던그 시간다시 쳐온 눈보라를 죽음이라 부르자모두들 끌려가고 서투른 너 홀로 뒤에 남긴 채먼 바다로 나만이 몸을 숨긴 날낯선 술집 벽 흐린 거울 조각 속에서어두운 시대의 예리한 비수를등에 꽂은 초라한 한 사내의겁먹은 얼굴그 지친 주름살을 죽음이라 부르자그토록 어렵게사랑을 시작했던 날찬바람 속에 너의 손을 처음으로 잡았던 날두려움을 넘어너의 얼굴을 처음으로 처음으로바라보던 날 그날그날 너와의 헤어짐을 죽음이라 부르자바람 찬 저 거리에도언젠가는 돌아올 봄날의 하늬 꽃샘을 뚫고나올 꽃들의 잎새들의언젠가는 터져나올 그 함성을.. 김준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아아 光州여, 우리나라의 十字架여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 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 백기완, 묏비나리 묏비나리(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 백기완 맨 첫발 딱 한발 떼기에 목숨을 걸어라 목숨을 아니 걸면 천하 없는 춤꾼이라고 해도 중심이 안 잡히나니 그 한발 떼기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라 아니 그 한발 떼기에 언땅을 들어올리고 또 한발 떼기에 맨바닥을 들어올려 저 살인마의 틀거리를 몽창 들어엎어라 들었다간 엎고 또 들었다간 또 엎고 신바람이 미치게 몰아쳐오면 젊은 춤꾼이여 자네의 발끝으로 자네 한몸만 맴돌자 함이 아닐세 그려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저 썩어 문드러진 하늘과 땅을 벅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려라 돌고 돌다 오라가 감겨오면 한사위로 제끼고 돌고 돌다 죽음의 살이 맺혀오면 또 한사위로 제끼다 쓰러진들 네가 묻힐 한 줌의 땅이 어디 있으랴 꽃상여가 어디 있고 마주재비도 못 타보고 썩은 .. 이시영, 5월 어머니회 5월 어머니회 아르헨띠나의 ‘5월 어머니회’는 지금도 세 가지의 금도를 지킨다고 한다. 첫째로 실종된 자식들의 주검을 발굴하지 않으며, 둘째로 기념비를 세우지 않으며, 셋째로 금전보상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아직 그들의 가슴속에서 결코 죽은 것이 아니며, 그들의 고귀한 정신을 절대로 차가운 돌 속에 가둘 수 없으며, 불의에 항거하다 죽거나 실종된 자식들의 영혼을 돈으로 모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무산, 광장은 비어 있다 광장은 비어 있다 백무산 우리가 우리를 버리고 기꺼이 이곳에 모인 것은 시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우리가 모여 이토록 뜨거운 광장을 이룬 것은 데모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저 문란한 연회장은 우리의 나라가 아니고저 지저분한 계모임은 결코 우리의 정부가 아닌데우리가 저들에게 요구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이곳에 모인 이유는 저들이 국민을 탄핵했기 때문이다저들 맘대로 도륙하고 처분한우리가 맡긴 양 떼를 찾아오기 위해서다 우리가 이곳에 모인 것은 진압을 하기 위해서다 국헌을 걸레로 만든 쥐들의 내란과 개들의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이 광장에 모인 것은우리 삶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다부패한 나라에서는 누구든 정직하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광장에 모인 것은 철거를 하기 위해서다 저들의.. 이시영, 네슬레 네슬레 이시영아옌데는 만약 선거를 통해 집권하면 열다섯살 이하 모든 어린이들에게 매일 0.5리터의 분유를 무상배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해 9월 선거에서 승리한 인민전선은 칠레의 모든 우유산업을 독점하고 있던 스위스의 다국적 기업 네슬레를 상대로 제값 주고 살 터이니 분유를 공급해달라고 했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수만명의 어린이들은 아옌데 정권 이전처럼 다시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개혁은 좌절됐으며 미국은 마침내 삐노체뜨를 앞세운 군부 쿠데타를 통해 그를 사살하기에 이른다. 1973년 9월 11일 그는 군인들로 둘러싸인 대통령궁에서 마지막 라디오 연설을 한다. "나는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이길 수 있겠지만 사회의 진전을 범죄나 힘으로 멈추게 할 수는 없.. 이전 1 2 3 다음